몇년전 거리 공연 및 공공공연으로 연주도 하고 관련 단체의 스탭으로서 일을 할 시절의 야그다.
새로 영입되는 공연자는 간단한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뭐 까칠하게 보는 것은 아니고 실력을 기본 조건으로 하긴 하지만 대중 앞에서 보기 좋게 듣기 좋게 공연할 수 있는지를 주로 본다(무대매너와 쇼맨쉽도 판단 기준이 된다).
한번은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가 왔고, 관례에 따라 간단한 곡의 연주를 부탁한 적이 있다.
"당장 연주할 만한 알고 계신 곡 있으면 한곡 부탁드릴께요~^^"
"글쎄요.. 당장 생각나는 곡이 없는데..? 어떤 곡 해볼까요?"
"그럼.. 좀 진부하긴 하지만(필자는 원래 좀 진부하다..;;) 예스터데이 어떠세요? 아님 '나의 모든 사랑이..' 어쩌구 하는 노래나.."
"노래는 아는데.. 악보가 있어야 되는데 악보좀 주실래요..?"
"예?? 계이름 알지 않으세요? 그냥 연주하면 될텐데.."
"아뇨,, 왠만한 클래식 곡들은 외우는게 많은데.. 일반 대중곡들은 잘 몰라서요~"
"그럼, 멜로디에 맞춰서 화음반주 넣을 수 있으세요..?"
"바로는 안되구요.. 악보만 있으면 가능하지요."
결국 그 양반은 비발디 협주곡을 간단히 연주했고 그 후 1년여 연주활동을 했다고 기억된다. 어떤 곡을 연주했던 그냥반은 전공을 마친 프로연주자였고 유럽에서 학위도 받았다고 들었다. 일단 레테르가 보증을 한 셈이었다.
물론 왠만한 곡들을 악보 없이 즉석에서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도 많이 있다. 말하고 싶은 부분은 훨씬 많은 연주자들이-특히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이- 이런 경향을 주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비교해서, 가수들은 거의 모든 노래를 악보 없이 부를 수 있고 기타 반주자 또한 악보 없이 즉석 반주를 넣을 수 있다. 재즈 연주자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이 글은 지난 칼럼에서처럼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과의 갈등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 솔로를 해야 하는 협연자의 경우는 어떨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왠만한 큰 무대라면 보면대를 놓고 연주하는 협연자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모습은 간혹 아마추어와 협연을 하는 공연이나 조금은 작은(부담이 적은) 무대에서 보이곤 하는데 보기에 영 탐탁치는 않더라는 것이다. 마치 오페라에서 아리아를 부르는 소프라노가 자기 차례에 보면대 앞에 서서 악보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거부감이 든다. 드라마에서 대본을 보고 읽는 듯한 느낌처럼 자연스럽지가 않고 성의가 없어 보이며 객석에서도 가려지는 부분이 많아 시각상 좋지 않다. 한번은 출장 녹음을 갔다가 리허설을 마치고 나온 협연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악보를 보고 하세요..? 외워서 하시는게 더 편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이번 하시는 곡은 정말 유명한 곡인데..(대학의 입시곡이기도 하여 이미 외우셨을것 같은데..)"
"에고,, 일일히 다 외우고 다닐 수는 없지요~ 제 무대도 아니고 잠깐 도와주러 온것 뿐인데.. 게다가 하다 틀리면 어떡합니까..? (X팔리지 않나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악보를 보고 연주한 경우 치고 좋은 결과를 본적이 별로 없다는 기억이며 이는 통계상 사실이다. 어떤 단체의 경우는 트리플 콘체르토 세명이 죄다 보면대를 놓고 협연을 했었고, 결국 그 연주는 자신들이 판단해도 영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녹음을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리고는 "전날 감기가 들어서...;;" 어쩌구의 변명을 들어야 했다. 반대로, 아마추어와의 협연에서도 암보로 연주했던 공연은 거의 다 좋은 평을 들었다. 단순히 외우고 않고의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 결과론이라는 것을 이해하실것이다 - 외울 정도의 성의와 연습량을 가지지 않았든지 기억력이 좋지 않든지..;; -
"연주자가 천재도 아니고 다 외울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정성이면 악보에 더 집중하여 악보가 지시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야지요~"
일면 그럴듯한 변명을 하는 분도 계시다. 그러면 한시간 이상 공연하는 연극 배우들은 전부 천재들이며 두시간 공연하는 미사리 가수들도 천재들이며 그 사람들은 죄다 그 시나리오가, 악보가 지시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은, 정성 없이 대충 하는 사람들이라는 역설적인 야그다. 재즈연주자들은 죄다 뽕 맞은 사람들이고.
"다른 장르는 외우기 쉽지요. 클래식 연주는 좀 다릅니다.."
꼭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클래식 음악은 보다 섬세하고 깊이가 있고 음 하나하나를 '예술적으로' 살려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악보에 그런 깊이가 숨어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악보 자체는 가요 악보든 베토벤 악보든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서양음악으로서의 모든 기보법은 이미 동일하다. 악보가 지시하는 것은 정말 단순하고 기계적이며 최소한의 골격을 지키기 위한 '지시'일 뿐이다. 악보란 넘은 그 형식상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에 가깝다.
예를 들어 가끔은 특정 악보에 이렇게 표시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 부분은 다소 어두운 하늘에 기러기 두마리가 날아가며 낙엽이 하나 떨어지고 있는 풍경을 상상하며 연주할 것..."
대체 어떻게 연주하라는 말인겨... 과연 이런 표현을 객관적인 소리로써 설명할 수 있는가? 어떤 악상기호로써 표시할 수 있을까. 우아하게, 정열적으로, 불꺼지듯, 너무 급하지 않게... 등등 최대한 자세하게 표현하려 한 아티큘레이션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객관적인 기준은 어디인가. 어떤게 우아한 것이고 정열적인 것인가?? 불은 또 왜 꺼지는가..;; 결국 악상과 표현은 오로지 연주자의 심상에 달려 있으며 지휘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야그다. 협연자에게 달려있고 가수와 배우들에게 달려 있다. 악보가 모든 행동을(결과를) 예시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오히려 "연주자가 알아서 연주해주기를" 바라는 부분이 더 많은 것이다. 일전에 올린 필자의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고전시대 대부분의 작곡들은 즉흥 연주와 아마추어 연주를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이젠 반대의 경우도 소개한다. 이 단체는 무려 3년여를 준비하며 공연 없이 연습만 했고, 1년동안 한 곡을 죽어라고 외워서 결국 30분이 넘는 베토벤의 대푸가를 악보 없이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때로는 몇분간 눈을 감고서. 이 곡은 정말 난해하고 까다로운 곡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암보로 연주한 최초의(적어도 국내에선) 단체가 아닐런지. 그리고 이 단체는 가능한 한 더 많은 곡들도 암보로 연주하고 있다.
"외워야지요. 그래야 전체 악상과 표현을 마음에서 꺼낼 수가 있어요. 음악에 더 몰두할 수도 있고 다른 파트와의 교감도 더 잘되지요~"
콰르텟엑스 리더의 말이다.
비단 연주자뿐 아니라 지휘자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커다란 총보(스코어)를 지휘보면대에 올려 놓은채 지휘하는 모습은 때로는 불안해보이기까지 한다. 단원들의 파트보와 달리, 모든 악기가 다 들어있는 이넘은 몇마디 안가서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빠른 패시지에서는 지휘자의 한 손은 쉴새없이 악보를 넘기고 있으며 눈길의 반은 단원들보다 악보에 더 가 있을 경우도 있다. 물론 총보의 모든 음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흐름을 체크하는 것이고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3번의 어설픈 지휘 경력이 있는 필자의 짧은 경험으로는 악보 보는 것이 더 버거워서 아예 외워버렸었다..;;
- 한달쯤 전 첼리스트 장한나양이 성남 국제 청소년 관현악 페스티벌에서 코리올란 서곡을 암보로 지휘하기도 했다. 정말 천재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지휘자로서의 첫 데뷔로서 그정도의 열성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완성도를, 감동을 더 높게 쳐주고 싶은 것이다. 사실 암보의 역사는 거장 한스 폰 뷜로에서 연유되는데, 그 누구도 그를 "섬세하지 않고 대충 연주하는" 지휘자로 평하진 않는다. 그는 바그너, 브람스, R 슈트라우스에 관한한 대가로 손꼽힌다. -
여담이지만, 음악이란 놈은 그 실체가 없다. 마치 "사랑","국가","민주주의" 처럼 그 객관적인 형체도 구체화할 수 있는 바운더리도 없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바보스럽게 들린다면, "음악이 무엇이냐" 또한 정답이 없다. 표현상 "음악을 하는 행동"이 있을 뿐이고 그 결과물인 악보, 음반, 공연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악보 또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시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추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로운 심상과 허상을 이끌어 내듯이 악보도 또 다른 매개체를 통해 재현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는 좀더 지식과 경험과 기술이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의 악보(플륫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 2악장)를 보며(읽으며)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신의 음성을 듣는듯 했다.."고 되뇌이는 유명한 광경은 (비록 좀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악보 자체가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악보를 읽고 실시간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음상결과로 만들어 내는 살리에리의 남다른 음악적 재능과 경험의 결과인 것이다. 이런 진짜 천재들이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연주를 통해서만 작곡가의 심상을 느낄 수가 있다. -
이렇게 '음악을 하는 행동'은 어디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감히 결론 짓건데, 이는 "교감"에 있다. 어떤 지식과 기술이라도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별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음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여" 나의 심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교감, 그래서 같은 노래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그 느낌과 감동이 다른 것이고 그래서 리메이크와 오마쥬가 인기를 끌 수도 있는 것인데, 유독 클래식 연주에 있어서는 상당히 보수적임을 느낄 수 있다. 대체로 새로운 시도는 이단시되고 무시되며, 오히려 특정 거장(또는 스승)의 연주에 근접하면 잘하는 것이라고 평하게 된다. "모짜르트는 이렇게 연주해야 돼!"라고 저마다 주장하는데 혹시라도 모짜르트가 들었다면 그 특유의(영화에서의) 침 튀는 웃음소리를 들었을 법한 경우가 너무도 많을 것 같다. 전문가들이나 매니아들은 "모짜르트 맛이 잘 나도록 연주했네"라며 감동할지 모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알맞게 들릴 때 감동한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든 외워서 하든, 혹시라도 이것은 연주자의 취향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적어도 협연자라면 그 곡에 대해서만큼은 눈감고도 해야 하는 성의가 있어야 하는것 아니냐고 묻고 싶은 것이며 왜 충분히 할 수 있는 곡조차 악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느냐는 야그다.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음악 교육들이 교과서와 악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는 야그이기도 하다. 헨델이 왜 음악의 어머니인지를 외워야 하고(진짜 여자인줄 알고 있는 친구들도 많았다) 네도막 형식의 구조를 외워야 하며 무조건 고향의 봄을 피리로 불 수 있어야 하냐는 말이다 - 중학교때 어떤 친구는 J.S.Bach를 제임스 바하라고 답을 썼다가 디지게 혼났다..ㅡ.ㅡ '멘델스존'을 '멘델의 스잔'으로 쓴 친구도 막상막하였다). 내가 작곡가나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닌데. 클래식음악이라는 "제도권음악"이 마치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처럼 잘못되어 있음에 대한 반론을 감히 하는 것이다.
음악은 이론보다 더 중요한 "교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가 "도" 소리를 내었을 때 옆의 친구가 "솔" 소리를 내고 이것이 얼마나 안정되고 기분좋게 들리는지에 대한 "느낌"부터 가르쳐야 옳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기타 코드를 가르쳐 주고 간단한 가요를 부르게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악보 없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느끼고 맞춰 가는 가운데 "음의 질서"를 배우는 것이 더 좋겠다는 야그다. 그래서 클래식보다는 난타를 가르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야그이며.. 왜 내 옆방의 젊은 친구가 한번도 작곡이나 화성학을 배운 적이 없는데 지금은 유수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작곡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싶은 것이다.
건반악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클래식 악기들은 멜로디 악기이며, 다른 사람의 반주를 밑에 깔고 "튀는 솔리스트"로서 연습하고 배워왔다. 화합과 양보 보다는 자신이 먼저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런 음향적 구조와 교육 과정 속에서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장영주들은 갈 수록 많이 등장하지만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베를린필은 한국에 아직 없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는 이들을 존경하고 고마와하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반면에 왜 한국에서 합주단과 "솔리스트앙상블"이 성공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할것이다. - 솔리스트들이 모이면 막말로 개판된다. 앙상블보다는 자기 소리가 더 크게 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쉽게 보인다. 몇년전 교향악축제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협연때문에 지방 교향악단의 연주가 죽을 쑨 기억도 있다 -
실제 거리 공연에서나 카페, 재즈바에서의 공연에는 돌발상황들이 간혹 발생한다. 관객들의 신청곡도 그렇지만 가끔은 장비의 오류나 악보의 분실 등으로 즉석 연주를 해야할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대부분의 연주자, 가수들은 상당히 많은 곡들을 꿰고 있다. 특히 업소(밤무대)에서 이런 준비는 필수 사항이다. 내 주변의 가수들만 보아도 평균 200곡 이상을 악보 없이 기타반주로 바로 공연이 가능하다. 솔리스트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반주기라도 준비해야겠지... 그나마 반주기에는 악보가 뜨니 멜로디 연주가 가능하지 않은가.
예전에 합주후 또는 음악 모임후에는 여럿이 모여서 연습실이나 고수부지에서 즉석 연주를 하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멜로디 악기 연주자들은 감히 즉석 연주에 끼지 못하는 것이 경험상 사실이다. 멜로디는 대충 따라하겠는데 반주는 도저히 하지 못한다.
"화성학을 배운 적이 없지 않느냐"라는 볼멘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음악의 기본은 교감이며 교감의 기본은 "남의 소리를 듣고 남에게 맞춰줄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가수들이 많은 노래를 자연스럽게 부르고 화음을 넣어 주는 것처럼, 기타리스트나 피아니스트가 자연스럽게 반주를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단 하나의 악기 만으로도 멜로디가 되고 반주가 되고 그 어울림과 교감이 연주자도 즐겁고 남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는 그런 감수성의 교육이 아쉽다.
막상 즐기고 싶을 때 즐길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음악이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진정으로 대중과의 교감을 위해 거리 공연에 나섰다면, 그리고 자신이 프로라고 생각되면 최소한 관객들에게 "악보를 주세요!" 라고 외치는 기상천외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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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 / 청계천 신문 [청계천 맑은내] 게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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