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글
[스크랩] 거지성자 배동순(베드로) 할아버지
Klara Song
2007. 10. 2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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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성자 고 배동순 할아버지 삶과 신앙
"이게 무슨 냄새야? 웬 거지가 미사에 온 거야." "아니, 성체를 모시려 하다니. 배고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함께 끌어냅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후반, 어느 때부터인가 누더기에 깡통을 든 거지 한 명이 명동성당 주일미사 때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달은 씻지 못했는지 몸에선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게다가 잘 걷지도 못하고 절뚝거리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동냥하면서 매일미사 참례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기분 나빠했다. 모두들 찡그리며 거지에게 눈총을 보내던 차에 그가 영성체를 모시러 나가려하자 더는 못 봐주겠다며 끌어냈던 것이다. 어눌한 말투로 소리치며 저항해봤지만 사람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 거지는 작정한 듯 명동성당 마당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먹고 자며 미사가 있을 때마다 보란 듯이 참례했다. 또 동냥했던 돈으로 주일헌금을 꼬박꼬박 챙겨 냈고 따로 모아 둔 돈은 성전건축기금으로 내 놓았다. 또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성당에 나타나 새벽미사가 있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기도를 바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사람들이 명동에서 그를 발견할 때면 그는 언제나 기도 중이거나 미사 참례 중이었다. 따가운 눈총을 보내던 신자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성당 한켠에서 생활하는 그에게 먹고 입을 것을 갖다 주는 신자들이 생겨났고 그를 끌어내며 내쳤던 사람들은 용서를 구했다. 그는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항상 이렇게 얘기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기도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힘입니다." 기도하는 거지에게 사람들은 이제 오히려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며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더이상 사람들이 내쫓던 굶주리고 헐벗은 거지가 아니었다. 그가 사는 곳은 어느새 영적 상담창구가 돼 있었고 사람들 발길은 끊이질 않았다. 그를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그의 온전한 기도 생활과 끝없는 믿음에 감탄하곤 했다. 그렇게 명동성당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뇌성마비 거지는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서 만난 예수님'이라고 칭송한 고(故) 배동순(베드로, 향년 82살) 할아버지다. 10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거행된 장례미사에는 그동안 그에게 기도를 청하고 그를 영적 아버지로 삼았던 '아들, 딸'들이 함께했다.
"살아서 만난 예수님 칭송" 그들은 한결같이 "아버지 기도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고 아버지는 우리 삶의 든든한 기둥이었다"며 고인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1926년 충북 제천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경기를 일으켜 뇌성마비 장애인이 됐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부모들은 장애를 지닌 그를 거의 돌보지 않았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그는 한국전쟁 때 남동생은 전쟁터에서, 여동생은 피난길 폭격으로 잃었다. 그나마 살아계신 아버지는 암에 걸려 그가 동냥해서 벌어온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다 숨을 거뒀다. 혈혈단신이 된 그는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명동성당을 찾게 된 것은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싶은데 이름을 들어본 성당이라곤 명동성당밖에 없어서 물어물어 찾아간 것이었다. 1984년 배 할아버지는 명동 생활을 끝내고 꽃동네로 왔다. 당시 한국 땅을 밟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명동성당을 방문하면서 명동성당 주변을 정비하던 차에 마당 한편을 차지하던 배 할아버지 공간이 없어지면서다. 꽃동네에서도 밥 먹고 잠 자는 시간을 빼고는 모두 기도하는 데 바쳤다. 배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봉사자들은 "할아버지는 새벽 2시면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꽃동네로 거처를 옮겼지만 여전히 그를 기억하며 기도를 청하는 이들 발길은 이어졌다. 이처럼 평생을 기도로서 사랑과 은총을 베풀었던 그는 마지막까지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고 떠났다. 자신의 시신과 안구를 기증한 것이다. 장례미사를 집전한 꽃동네 오웅진 신부는 "아마 지금 쯤이면 배 할아버지 각막이 누군가에게 이식 돼 새 빛을 볼 수 있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죽을 때까지 기도를 바쳐도 모자란다고 했던 그 분이야 말로 살아있는 성인이자 예수님이었다"고 말했다.
늘 주님께 감사하며 기도 그리고는 고인이 회갑을 기념해 남긴 회고록 한 구절을 들려줬다. "모든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을 살고 있는 것이다. … 때문에 나는 죽을 때까지 감사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 제일 감사하는 것은 이 고통을 주신 것에 대해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다면 나도 수많은 죄를 지었을 것이다. 난 이런 고통 덕분에 죄도 덜 짓고 또 십자가 고통도 조금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 항상 주님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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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꽃동네를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고 배동순 할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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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웅진 신부가 배동순 할아버지 장례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 | 평화신문 기사중에서 |
출처 :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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