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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악기탐구] 트라베르소 음색의 변화

Klara Song 2007. 7. 8. 11:49
 
 

트라베르소 음색의 변화

 

 

 

오랜기간동안 트라베르소는 인기가 많았던 리코더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문헌상 트라베르소가 유럽에 들어온 시기는 12세기말이었다. 그당시 트라베르소는 아주 많이 연주가 되었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트라베르소는 독일식 플루트(Deutsche Flöte) 또는 플루트 알망드(Flûte Allemande)*라도 지칭되었다. 르네상스식 트라베르소는 내경관이 직선인 형태를 갖았다. 특히 취구가 작았기 때문에 음색은 따듯하고 아주 부드러웠다. 그래서 루터(Martin Luther)는 트라베르소를 애호하는 악기로 뽑기도 하였다.

 

* 알망드(Allemande)는 "독일풍의 무곡"이란 뜻으로 독일 라이겐의 무곡이라고도 한다. 16세기 중엽에 프랑스에 전해져 유행하였다. 17세기에 들어서는 무용에서 독립되어 모음곡 등 다악장형식의 음악에 인용되어 순수 기악으로서 양식화되었다.

 

 

일반적으로 16세기 앙상블음악에는 많은 플루트들이 도입되었다. 특히 많은 리코더와 트라베르소 계열 악기들은 함께 여러음부에 사용되었다. 이런 협주를 듣고, 17세기초 미카엘라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특히 아늑한 거실에서는 연주는 아주 우아하고, 잔잔하고, 사랑스러운 조화를 이룬다"라고 음악구문론(Syntagma Musicum)에 적었다.

 

 

악기의 구성은 소위 스위스파이페(Schweizerpfeife)**를 포함한 트라베르소 계열 3개와 8개의 리코더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트라베르소의 음색은 다른 관악기와 현악기들의 앙상블에 적용되면서는 리코더에 비하여 퇴색되기 시작한다. 리코더가 당시 오페라오케스트라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는 반면, 트라베르소는 실내악용 악기로 남았다. 이유는 트라베르소가 음량이 적을 뿐아니라, 음색이 앙상블에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스위스파이페(Schweizerpfeife)
16세기 플루트보다는 츠베르크파이페(Zwerchpfeiff), 쉬바이쳐파이페(Schweitzerpfeiff)로 프랑스지역에서는 피프레(fifre)***로 불리웠으며, 군대에서 드럼과 같이 연주가 되던 악기이다. 회양목이나 배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직선형태의 내경과 키가 없이 6개의 운지홀을 갖았다. 그림에서 보듯이 길이 64.3 cm, 취구로부터 악기끝의 거리 55cm이고, 악기의 양끝은 녹쇠로 처리되었다.

 

16세기 후반의 스위스파이페, d1
바젤 악기역사박물관 소장
 

 


 

피리부는 소년("Le Fifre", "The Fifer", 1866)
에두아르 마네(Edoward Manet)

 

 


당시 존재했던 많은 음도에 조율을 마추는데, 트라베르소 연주자들은 문제를 가지고있었다. 또한 트라베르소의 음은 바로크 음악과 작곡가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1752년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트라베르소 연주법의 시험(Versuch einer Anweisung die Flûte traversière zu spielen)"에서 지적하듯 "밝고, 예리하며, 두껍고, 남성다운 음"을 내는 트라베르소가 필요하게 되었다.

 

 

중세이후로 트라베르소의 형태는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악기의 설계가 필요하였다. 제작에 있어 커다란 혁신은 17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있었다. 1650년 프랑스 악기제작자들 중의 하나인 장 오테테르(Jean Hotteterre) - 자끄마틴 오테테르(Jacques-Martin Hotteterre) 아버지의 사촌 - 는 운지홀의 사이를 좁히고, 직선이었던 내경을 원추형으로 함으로써 취구로 부터의 공기가 관의 끝까지 힘있게 나갈수 있게 하였다. 또한 제작의 용이함을 위해서 머리, 중간, 다리 3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리하여 음역은 2옥타브 이상이 되었다. 또한 보다 커진 취구를 갖게된 형태는 후에 크반츠가 요구하였던 밝고, 힘있는 음색을 갖게된 반면, 이전에 지니고 있던 아름답고 풍부했던 저음을 잃게 되었다.

 

 

베를린 악기박물관에 있는 트라베르소는 17세기말경 장 오테테르(Jean Hotteterre)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자끄마틴 오테테르(Jacques-Martin Hotteterre)"Le Romain"을 연주했던 악기와 같은 모델이다. 악기는 회양목으로 만들어졌고, 3부분으로 이루어졌다.  7번째 운지홀은 다리부분에 위치했으며, 키는 은이나 황동으로 덥혀졌다. 음도에 관한 문제해결을 위해 악기의 중간부분을 다시 둘로 나누었으면, 또한 나누어진 2부분중 윗부분은 최대 6개까지 다양한 것으로 교체 가능했다. 중간부분의 길이의 변화에 맞추기위해 머리부분의 끝에 움직일수 있는 조절코르크를 부가하였다. 더나아가 머리부분과 다리부분도 2개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이는 다양한 중간부분으로 인해 안좋았던 음색을 더욱 나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기본음계 D장조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는 키를 사용한 복잡한 운지로인해 불협음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추가적으로 키를 붙임으로써 음정이 향상이 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18세기중엽이후 많은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악기에 키를 붙이는 것을 거부하였다. 키를 사용해 만들어진 음들은 트라베르소 원래의 음과는 달랐으며, 어둡고 확실치 않았다. 키없은 원전악기로 연주되는 경우 악보의 해석뿐아니라 청중에게 추가적으로 자극을 주게되었다.

 

 

19세기 트라베르소는 테오발트 뵘(Theobald Boehm)에의해 완전히 새로 디자인 됨으로서, 다양한 음색과 분화되었던 음들은 평균적으로 일정한 음색을 갖게되었다. 그후 뵘식 플루트는 여러 차례의 변형을 거치면서 강하고 힘있는 음색을 지니게 되었고, 로만틱 심포니, 오페라오케스트라 등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된다.

 

 

 

 


* 이글은 고음악 레이블인 Carpe Diem에 있는 카트린 헤르쪽(Katrin Herzog)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2005.12. by Block, SnC